조봇한 마을길 모퉁이
한발 남짓 싸리나무 설은문
노란 초가집 오른쪽
나즈막한 흙장 굴뚝에
뽀얀 회색 연기 피어 오르면
연기 가득한 정지에는
빨간 팥죽이 익었다
안방 윗묵의 한 모퉁이에는
가는 실 연기 살살 피어도
재잘거리던 남매들의 이야기
방 가운데 놓인 무쇠 화로에
시린 손 녹이고 입맛 다시며
자꾸 시선가는 정지 쪽에
작은 솥 열리는 소리나면
색바랜 뻘건색 네모 밥상에
얼음 뜬 차가운 무우 동치미와
쌀밥풀 가라앉은 검 붉은 죽
운 좋게 걸린 새알하나에
혼자 씨익 입꼬리 올려지고
매케 연기 냄새와 어우러지던
달고 담백하고 했던 동지 팥죽
안방 문틈 겨울바람 헤집고 들어
이내 졸던 호롱불 흔들릴때
나와 누이 동생들의 안녕을 빌며
장독대. 사립문. 화장실. 절구통옆
그리고 외양간 구시옆에
머리 수건 두르고 시린 손 비벼가며
한수저씩 내려놓던 엄니 동지팥죽
엄니의 간절한 바램에
춥고 찬 동지 밤도 뒷걸음하고
이쯤에 소복 소복 내리는 눈에
마루 밑 바닥에 누렁이 나와
발자국 남긴 좁은 마당 옛집과
많이 먹어라 하던 엄니가
너무 그립고 너무 보고싶다.
이젠....
2022년 12월 22일 동짓날 저녁 스케치.
'시와 사진 스케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묘 새해 작은 바램 (0) | 2023.01.01 |
---|---|
계묘년 새해를 맞으며... (0) | 2023.01.01 |
품고싶었던 그대 공룡능선 (0) | 2022.10.09 |
갈대 닮은 그대여... (0) | 2022.10.04 |
가을이 내리는 밤 (0) | 2022.09.30 |